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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3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0. Introduction
안녕하세요, 별의바람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수열과 급수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아마 해석학을 이미 알고 계신 독자 분들은 대뜸 수열부터 설명하는 이 글이 "근본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글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해석학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약간의 설명도 겸하고 있으니, 그 점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열과 부분합의 정의
우선 수열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봅시다. 고등학교에서는 수열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수를 나열한 것이라 정의합니다. 직관적으로 확 와닿는 정의이긴 하지만, 미적분학보다는 조금 더 엄밀하게 내용을 가져가기로 했으니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예시를 하나 들겠습니다. 다음은 1부터 시작하여 작은 순으로 홀수를 나열한 것입니다.
1, 3, 5, 7, 9, 11, 13, 15, |
이렇게 나열하면 첫 번째에는 당연히 1이 오고, 두 번째에는 3, 세 번째에는 5, 네 번째에는 7 등등으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아마 대부분 고등학교 교재에서는 다음과 같이 물어볼 겁니다. 이 수열의
한 가지 더, 수열(數列)의 한자 뜻은 말 그대로 수(數)의 나열(列)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열"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심코 수로 이루어진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점의 나열, 집합의 나열, 함수의 나열 등 다양한 물체를 나열한 것도 수열이라고 부릅니다. 조금 친절한 어휘로는 점열(sequence of points), 집합열(sequence of sets), 함수열(sequence of functions) 등이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수열을 다루다 보면 수열의 합도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위의 수열을 다시 예로 들면, 첫 항부터
1, 4, 9, 16, 25, 36, 49, 64, |
물론 이 또한 하나의 수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열의 각 항을 부분합(partial sum)이라고 부릅니다.
부분합과 Method of Exhaustion
이제 부분합을 이용하여 실용적(?)인 문제에 접근해 봅시다.
문제. 포물선 ![]() |
놀랍게도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는 이 문제를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에 해결했습니다. 어떻게 한 것일까요? 아르키메데스는 이미 알고 있는 도형의 넓이들로 계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우선 두 교점과 포물선의 꼭짓점이 만드는 삼각형을 생각합니다. 편의상 이를 1단계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보면, 구하려는 영역의 넓이가 삼각형들로 점점 채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삼각형들의 넓이를 실제로 구하고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가요? 이쯤되면 항들을 "무한히" 더했을 때의 값을
Claim. |
만약 |
![]() |
이때 삼각형 OCD의 넓이는 평행사변형 CDBA의 넓이의 절반입니다. 또 포물선과 현 CD로 둘러싸인 부분의 넓이는 그 둘의 사이임도 명확합니다. 따라서 삼각형을 그릴 때마다 삼각형으로 덮이지 않은 부분의 넓이는 절반 이하로 남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절반씩 줄이더라도 그 넓이가 |
Claim. |
위에서 |
따라서
수열의 극한과 급수
이제 위 예제를 수열과 부분합의 관점에서 바라봅시다. 우리는 수열
그렇지만 위 정의는 수학적인 정의는 아닐 뿐더러, 아르키메데스가 제시한 논의의 정수를 담지 못합니다. 우선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얼마나 다가가야 하는지 등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수학적인 표현은 제쳐두고, '가까이 다가간다'라는 말의 기준을 세워봅시다.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수열 그럼 조금 더 노력해서 요지는 극한값을 이야기하려면 수열의 값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가까이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는 이를 "임의의
이제 아르키메데스의 논의를 생각해 봅시다. 수열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기호가 나왔습니다. 우선
임의의 양수에 대하여 [ 이면 과 의 차가 보다 작은] 이 존재한다.
이것이 수학적으로 정의된 극한이고, 아르키메데스, 코시(Augustin-Louis Cauchy, 1789~1857)에 이어 바이어슈트라스(Karl Weierstrass, 1815~1897)가 수학계에 소개한 정의입니다. 처음부터 수식으로 이루어진 (1)을 보았으면 아마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접근을 알게 된 이제는 저러한 수식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편 앞의 수열이 합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수열
수학사(와 필자의 사견) 한 스푼
"무한"이라는 단어는 정말 긴 시간 동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매우 큰 것, 혹은 매우 작은 것을 무한히 크다, 무한히 작다고 표현하면 있어보이지 않나요 ㅎㅎ?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의 기원을 논의하면서 물질을 무한히 잘게 자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우리 우주가 영원히 이 자리에 존재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는 수학도 예외가 아니라서, 뉴턴과 라이프니츠 시절(대략 17세기)부터 사람들은 "무한히 다가간다"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이 개념은 결국 언젠가부터 남용되기 시작했고 수학사에 파국을 불러오게 됩니다.
1807년 푸리에(Jean-Baptiste Joseph Fourier, 1768 - 1830)는 굉장히 얇고 무한히 긴 판에서 열이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하던 중 다음과 같은 함수를 찾게 됩니다.
이 함수의 그래프를 그려보면
이 반복되는 주기 4인 함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어떻게 아는지는 지금은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러면
가 되어
이 문제가 코시가 무한급수를 연구하게 된 계기이고, 더 넓게 보면 지금의 해석학이 있게 한 토대가 됩니다. 일견 모순으로 보이는 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급수의 수렴/발산부터 연속, 미분까지 모든 정의와, 이제껏 함수라 생각했던 개념까지도 모두 뜯어고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에서 수학에서 엄밀성을 추구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코시 이전까지는 그러한 발상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클리드 이래로 수학에서 논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지만, 그래도 직관에 의존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불리는 오일러나 가우스마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여기서 제 감상을 짧게 말하자면, 수학은 언제나 난제를 통해 성장해 왔습니다. 357년 동안 난제로써 자리를 지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부터, 고대 그리스 시절에 제기되어 근대에 와서야 해결된 작도 불능 문제나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밀레니엄 난제들, 또 (약간 억지를 부리자면) 제논의 역설, 러셀의 역설 등 패러독스로 알려진 명제들이 그 예시입니다. 이러한 난제들을 만날 때마다 수학은 한층 더 치밀해졌고, 때로는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으면서까지 발전하는 모습이 알려주는 것은 수학은 절대 완벽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학자 David M. Bressoud는 자신의 저서 A Radical Approach to Real Analysis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대 수학의 고도로 정돈된 증명들은 수학에서의 발견이 언제나 자명하고 당연한 것이라는 잘못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수학사를 통틀어 실험적 정신과 그로 인한 오해는 수학의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
인간이 쌓아올린 논리적 체계와 인간의 직관은 언제나 상호작용하며 수학을 발전시켜 왔고, 일견 헤겔의 정반합으로도 보이는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힐베르트가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말했듯,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해석개론을 설명하다 보면 쉽게 쉽게 설명한다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내용이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가졌던 고민들을 앞선 수학자들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함수의 극한과 연속이라는 주제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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