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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3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0. Introduction
2022.08.19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4. 실수체
안녕하세요, 별의바람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실수체에서 더 나아가 유클리드 공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newcommand{\Rmath}{\mathbb{R}}\newcommand{\norm}[1]{\left\lVert #1 \right\rVert}\newcommand{\fixnorm}[1]{\lVert #1 \rVert}$
좌표공간과 해석기하 살짝
유클리드(Euclid, 생몰년도 미상)은 그의 저서 <원론>에서 공리들 몇 개로 기하학의 수많은 명제를 이끌어 냅니다. 중학교 때 배우는 도형의 성질(합동, 닮음, 원주각 등)은 모두 <원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원론>이 가지는 위상이 실감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유클리드 공간은 이러한 기하학이 잘 성립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 보시면 됩니다. 점, 직선, 합동 등의 개념을 토대로 길이나 각, 넓이 등의 양과 평행이동, 회전이동, 대칭이동 등의 조작이 잘 정의되는 공간 말이죠. 물론 이러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서 숫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실수를 구성할 때부터 수직선을 생각해 오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는 차원을 높여서 평면과 공간을 실수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은 실수들로 점을 표현해 봅시다.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평면좌표, 공간좌표는 사실 쓰이는 수가 2개냐 3개냐인 것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아예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좌표 하나에 수를 $n$-개 써서 표현하는 체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n$-튜플($n$-tuple) $$\mathbf x=(x_1,x_2,\ldots,x_n)$$들의 집합을 $\Rmath^n$이라 정의하면, 좌표평면은 $\Rmath^2$, 좌표공간은 $\Rmath^3$이 됨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mathbf x$는 $\Rmath^n$의 점(point) 또는 벡터(vector)라 부르고, 각각의 $x_1,\ldots,x_n$은 $\mathbf x$의 좌표(coordinate)라 부릅니다. 참고로 벡터는 덧셈과 상수곱이 가능한 것들에 붙는 이름입니다. $\Rmath^n$ 위에서의 덧셈과 상수곱은 우리가 알던 그대로 좌표별로 계산해 주면 됩니다.
실제로 물리나 공학 등지에서는 이러한 $n$-tuple과 일반 실수를 구별하기 위하여 tuple은 볼드체 $\mathbf x$ 등으로 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이들을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점, 그리고 필자가 타이핑을 치기 귀찮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앞으로는 벡터와 실수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x$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점을 정의하면 직선을 정의하는 것은 조금 더 쉽습니다. 지나는 점 $p$ 하나와 방향 벡터 $d$만 있으면 직선 $l$을 점들의 집합 $$\{p+td:t\in\Rmath\}$$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실수 $t$마다 점 $p+td$를 대응시켜주면 되겠죠?
길이와 각도
이제 위에 언급한 것들 중 길이를 정의해 봅시다. 길이와 거리는 지금 당장은 똑같아 보이니, 어느 정도 용어를 혼동하겠습니다. 두 점 $x=(x_1,\ldots,x_n)$와 $y=(y_1,\ldots,y_n)$이 주어져 있을 때 그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가능하면 $\Rmath^2$, $\Rmath^3$에서 정의했던 것과 비슷하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답은 바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x$와 $y$ 사이의 거리를 $$d(x,y)=\sqrt{(x_1-y_1)^2+\cdots+(x_n-y_n)^2}$$로 정의합니다. 물론 선분의 길이 $\norm{x-y}$는 양 끝 점 사이의 거리이므로 $\norm{x-y}=d(x,y)$로 정의하겠습니다.
이제 각의 크기를 정해 봅시다. 우선 $\Rmath^3$에서는 각의 두 변이 평면 하나를 결정하므로 그 평면에서 $\Rmath^2$에서 정의한 각도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논리적이어 보이기는 하지만, 계산이 너무나도 복잡합니다. 평면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외적도 들어가고 그 평면에서 다시 좌표계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더 높은 차원으로 확장하기도 불편한 것이 4차원 이상에서는 외적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집니다. 1-축과 2-축 모두에 수직인 직선이 3-축과 4-축 등 적어도 두 종류 존재하겠죠?
그렇다면 일반적인 $\Rmath^n$에서는 각을 논의할 수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다시 2차원으로 돌아가서, 각을 정의하는 방법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내적(dot product)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기하와 벡터 수업을 들었다면, 두 평면벡터 $a,b$에 대하여 $a,b$ 사이 각을 $\theta$라고 하면 $$a\cdot b=\fixnorm{a}\fixnorm{b}\cos\theta$$라는 관계식이 성립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내적은 벡터의 좌표만을 가지고 정의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n$차원으로 확장시키기도 용이합니다. 따라서 두 점 $x=(x_1,\ldots,x_n)$과 $y=(y_1,\ldots,y_n)$에 대하여 $\Rmath^n$에서의 dot product를 $$x\cdot y=x_1y_1+\cdots+x_ny_n$$으로 정의하고, 그 사이각 $\theta$를 $$\cos\theta=\frac{x\cdot y}{\fixnorm{x}\fixnorm{y}}$$를 만족하는 각으로 정의하면 되겠습니다.
유클리드 공간
이제 나머지 용어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넓이: 지금 당장은 정의하기 좀 힘들지만, 나중에 적분을 배우면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깔끔하게 넓이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 평행이동, 회전이동, 대칭이동: 결국 점을 점으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Rmath^n$에서 $\Rmath^n$으로 가는 함수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해석학의 주제는 아니고, 선형대수학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입니다.
- 도형의 합동: 위에서 언급한 세 조작을 통하여 포개어질 수 있는 도형들이라 정의할 수 있겠죠?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좌표공간 $\Rmath^n$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리와 길이(크기), 그리고 dot product의 개념이었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norm{x}=(x\cdot x)^{1/2}$라는 관계식까지 성립하므로, dot product의 개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기하학을 다룸에 있어도 이 세 개념들은 매우 중요하고, 그렇기에 수학자들은 거리와 길이, dot product를 추상화하여 각각 metric, norm, inner product라는 용어로 재정립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필요할 때 천천히 알아보고, 지금은 그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점들의 집합 $\Rmath^n$에 덧셈과 상수곱, dot product라는 연산을 추가로 부여한 묶음 $(\Rmath,+,\text{상},\cdot)$을 $n$-차원 유클리드 공간($n$-dimensional Euclidean space, 혹은 $n$-euclidean space)라 부릅니다. 여기서 '상'이란 글자는 상수곱을 의미하고, 이 묶음을 전부 쓰기 귀찮으므로 간단하게 좌표공간과 혼동하여 $\Rmath^n$으로 씁니다. 해석학을 함에 있어서 연산들을 모두 제외한 순수한 좌표공간을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앞으로 $\Rmath^n$이라 하면 대부분 유클리드 공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또 영어로 Euclidean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쓸 것이냐 아니냐는 각자 쓰기 나름입니다.
유클리드 공간은 해석학이나 기하학 모두에 있어 가장 밑바탕이 되는 공간입니다. 앞에서 정의한 실수를 이용하여 $\Rmath^n$을 정의함으로써 유클리드 기하학(그리고 동시에 해석학)이 작동하기 위한 토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기초 위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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