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모음
2022.07.23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0. Introduction
2022.09.02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5. 유클리드 공간
안녕하세요, 별의바람입니다. 이번 시간부터 약 4번 가량은 위상(topology)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newcommand{\Rmath}{\mathbb R}$
거리 공간
지난 시간에 정의한 유클리드 공간 $\Rmath^n$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공간입니다. 길이도 내적도 우리가 배웠던 그대로 가져갈 수 있죠. 이제 이 위에서 함수와 극한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극한을 다시 떠올려 보면,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바로 '한없이 가까이 간다'입니다. 가깝다는 말은 다시 말해 거리가 작아진다는 뜻이겠죠? 즉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길이와, 지난 시간에 스쳐지나가듯 언급한 metric이 등장할 차례라는 뜻입니다. 앞으로는 정말 다양한 집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유클리드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일반적인 집합에서 거리를 논해 보도록 합니다.
일반화를 이번에 필요한 것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서 정말 필요한 성질만을 찾아서 쏙쏙 골라먹는 것이죠. 당연하게도 우리는 지금 유클리드 공간만 알고 있기 때문에,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거리의 특징을 생각해 봅시다.
- 가장 기본적으로, 거리는 숫자로 된 값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수가 필요한지는 아래에서 차차 알아봅시다.
- 거리는 항상 0보다 크거나 같습니다. 방향 말고 크기만 따졌을 때 음수가 나오는 경우는 없죠? 또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0임은 당연히 성립합니다. 반대로 두 점 사이 거리가 0이면 두 점은 서로 같아야 합니다.
- 점 A에서 B까지 잰 거리나 B에서 A까지 잰 거리는 같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300킬로미터인데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500킬로미터면 굉장히 웃기겠죠?
- 임의의 점들을 꼭짓점으로 갖는 삼각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삼각형의 존재는 두 변의 길이의 합이 다른 한 변의 길이보다 길어야 성립합니다. 따라서 임의의 점 A,B,C에 대하여 (A에서 B까지의 거리)+(B에서 C까지의 거리)$\ge$(A에서 C까지의 거리)가 성립합니다.
- 무한히 긴 길이나 무한히 짧은 길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임의의 두 길이 $l,l'$에 대하여 하나를 꾸준히 더하면 다른 길이보다 길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ㅎㅎ)
- 삼각형 하니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넣어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야기하려면 직각이라는 개념도 생각해야겠죠?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이는 내적에 의하여 정의되기 때문에 거리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성질에는 걸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성질들이 생각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질들을 추려 보자면 (맨 아래는 제외하고) 위에서부터 4개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질들로 일반적인 거리를 정의하게 됩니다.
정의. 집합 $X$와 적당한 수 집합 $F$에 대하여 함수 $d:X\times X\to F$가 다음 성질을 만족한다 가정하자. 1. 임의의 점 $x,y\in X$에 대하여 $d(x,y)\ge 0$. 이때, $d(x,y)=0$일 필요충분조건은 $x=y$. 2. 임의의 점 $x,y\in X$에 대하여 $d(x,y)=d(y,x)$. 3. 임의의 점 $x,y,z\in X$에 대하여 $d(x,z)\le d(x,y)+d(y,z)$. (삼각부등식) 이때 집합 $X$와 함수 $d$를 묶어서 $(X,d)$를 거리공간(metric space)라 부르고, 함수 $d$를 $X$에서의 metric이라 한다. |
이때 $d$가 $X\times X$에서 $F$로 가는 함수라는 것은 별 게 아니고, $X$에서 점 두 개를 뽑아서 거기에 $F$의 원소를 대응시켜준다는 뜻입니다.
이제 위 정의에서 집합 $F$를 정해 봅시다. 어떤 숫자가 거리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적합할까요? 우선 위에서 언급한 "거리가 0보다 크거나 같다"라는 말과 거리의 덧셈, 더 나아가 나중에 거리의 곱으로 나타나는 면적이나 부피를 나타내려면 순서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아직 위의 목록에서 5번째는 쓰지 않았습니다. 이를 다시 기호를 통해 나타내면, 두 길이 $l,l'$에 대하여 $nl>l'$, $n'l'>l$을 만족하는 자연수 $n,n'$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질을 아르키메데스 성질(Archimedean property)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집합 $F$는 아르키메데스 성질을 만족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성질을 만족하는 가장 큰 순서체가 바로 실수체 $\Rmath$입니다 (자세한 증명은 아래에 참고문헌으로 달아두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metric을 나타내는 숫자로 실수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Topology와 그 motivation
이제 거리공간을 만들었으니, 이 공간에 위상(topology)을 주어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정의 이전에 잠깐 위상을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위상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일상에서 들어보는 위상, 혹은 위상수학이라 하면 "컵과 도넛이 같다"는 말, 혹은 조금 예전에 이슈가 되었던 "빨대의 구멍은 몇 개인가"에 대한 논쟁 정도고, 조금 더 수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오일러의 한붓그리기 문제도 위상수학의 일종이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위상수학으로, 구체적으로는 연속적인 변형에 대해 보존되는 집합의 성질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연속적인 변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위상수학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앞에서 도입했던!) 연속함수입니다. 그런데 연속함수(와 극한)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가까이 간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위상수학의 기본은 "가깝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로부터 출발합니다. 어떤 원소가 서로 가까운지 정의하고, 그 위에서 극한을 정의한다면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해석학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거리공간은 사실 위상을 주기 굉장히 좋은 집합입니다. 왜냐면 "가까이 간다"는 개념이 이미 metric을 통하여 너무나도 잘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제 거리공간에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필수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가겠습니다.
근방(neighborhood)과 열린집합(open set)
가까이 간다는 개념을 논의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단어가 바로 "근처"입니다. 거리공간에서는 점 $x$의 근방(neighborhood) $N_r(x)$을 $x$를 중심으로 하고 반지름이 $r$인 open ball로 정의하게 됩니다. 이때 open ball이란, $x$를 중심으로 반지름 $r$에 대하여 $d(x,y)<r$인 점 $y$들의 집합입니다. 일상언어로 말하면 경계를 포함하지 않는 구가 되겠습니다. 또 $X$의 적당한 부분집합 $E$와 그 원소 $x$에 대하여 만약 $E$에 포함되는 $x$의 근방 $N_r(x)$이 존재하면 $x$가 $E$의 내부(interior)에 있다(혹은 interior point다)고 하고, 만약 $E$의 모든 원소가 $E$의 interior에 존재하면 $E$를 열린집합(open set)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열린집합은 어떻게 생긴 집합일까요? 우선 $E\subset X$가 열린집합이라 합시다. 그렇다면 임의의 원소 $x\in E$에 대하여 $x\in N(x)\subset E$인 $x$의 근방 $N(x)$가 존재하므로, 이들을 모두 모은 집합 $N=\bigcup_{x\in E}N(x)$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각 $N(x)$들이 $E$의 부분집합이므로 $N\subset E$이고, $E$의 원소를 아무거나 잡아도 그에 대응하는 근방이 존재하므로 $E\subset N$이 동시에 성립합니다. 즉, 열린집합은 open ball들의 union으로 결정됩니다. 경계가 없는 것들의 합집합이니 물론 열린집합은 경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극한점과 닫힌집합(closed set)
거리공간 $X$와 그 부분집합 $E$, 그리고 원소 $x\in X$에 대하여 $x$가 $E$의 극한점(limit point)라는 것은 $x$의 임의의 근방 $N$ 안에 $x$ 말고도 또 다른 $E$의 원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x$를 기준으로 거리가 1 미만인 점, 1/2 미만인 점, 1/3 미만인 점 등이 계속 존재할 때 $x$가 $E$의 limit point가 됩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면 수열의 극한과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나요?
또 만약 $x\in E$에 대하여 $x$가 극한점이 아니라면, 적당한 $x$의 근방 $N$에 대하여 $E$의 원소가 $x$ 혼자라는 상상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x$를 $E$의 고립점(isolated point)라 부릅니다.
이제 만약 $E$가 자신의 모든 limit point들을 원소로 가지고 있다면, $E$를 닫힌집합(closed set)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늘상 생각하는 '예쁜' 도형들을 생각하면, 경계점을 모두 포함하는 집합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주의사항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열린집합과 닫힌집합은 서로 반대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열린집합은 경계를 가지지 않고, 닫힌집합은 경계를 가진다고 했으면서 무슨 소리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경계가 없다면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없겠죠. 예를 들어 유클리드 공간 자체(여기서는 편의상 $\Rmath$)를 생각해 봅시다. 이 공간 전체에 경계가 있나요? 물론 우리는 아직 경계를 정의하지 않았으므로 논리적이고 엄밀하게 증명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유클리드 공간이 무한하므로 그런 경계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Rmath$의 모든 원소는 $\Rmath$에 포함되는 근방을 가지고, 또 $\Rmath$의 limit point는 모든 점들이므로 $\Rmath$는 열린집합인 동시에 닫힌집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열린집합과 닫힌집합이 아예 무관계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열린집합의 여집합(complement)는 닫힌집합이고, 따라서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쓰다 보니 분량 조절에 조금 실패한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요약하면 이번 시간에 우리는
- 유클리드 공간의 거리에 대한 성질만을 뽑아와서 거리 공간을 만들었고,
- 그 위에서 점들의 인접함을 판단하는 위상이라는 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체는 열린집합과 닫힌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용하게 쓰기에 아직 이 체는 도구가 적습니다. 따라서 다음 시간부터 얼마간은 이 체를 보강하는 작업을 해 보겠습니다. 우선은 열린집합의 성질과 closure에 대해 작성하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가장 큰 아르키메데스 순서체는 실수체이다: 링크(영문주의)
다음 글 보기
2022.10.14 - [수학/해석개론]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7. 위상의 성질과 closure
'수학 > 해석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공지 (2) | 2023.01.04 |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7. 위상의 성질과 closure (0) | 2022.10.14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5. 유클리드 공간 (0) | 2022.09.02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4. 실수체 (0) | 2022.08.19 |
[도입이 쉬운 해석개론 이야기] 3. 다시 보는 실수 (0) | 2022.08.16 |